책임의 무게는 공평하게 나눠져야 한다
얼마 전, 내가 겪은 일은 아니지만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목격한 장면이 하나 있다. 입사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신입사원이 입사 15년 차 대리님께 심하게 꾸중을 듣고 있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귀를 기울이니, 이유는 이랬다.
그 신입사원이 감사인과의 자리에서 편하게 던진 질문이 문제가 되었다. 감사인은 이를 꼬투리 삼아 지적 사항을 만들었고, 그 결과 해당 신입사원은 상사에게 혼이 나고 있었다. 단순한 주의나 조언 정도였다면 이해할 수도 있었겠지만, 분위기는 그 이상이었다. 흔히 말하는 ‘갈굼’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만큼 강한 질책이었다.
"생각 좀 하고 말해라." 그 말이 유독 강하게 꽂혔다.
정말 신입사원의 잘못일까?
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애초에 신입사원이 감사인과 마주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겨우 2년 차 직원이 한마디 던졌다고 해서 회사가 불리해질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자리였다면, 그런 자리에 신입사원을 배석시키지 말았어야 했다.
그리고 설령 실수가 있었다 해도, 그 책임을 전적으로 신입사원에게 떠넘기는 것이 맞을까? 그는 아직 회사의 분위기와 감사 대응 방식에 대해 배워가는 중이었다. 상사가 미리 방향을 잡아주거나, 사전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오히려 관리 책임이 있는 쪽은 대리님이 아닐까?
회사도 마찬가지다. 조직의 일원이라면 실수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실수를 통해 배우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종종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약한 고리를 희생양 삼는 경우가 많다. 신입사원이 조직 내에서 가장 약한 존재이기에, 비난받기 쉬운 대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권한이 주어진다는 것의 의미
사람의 본성 중에는 ‘다스리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 것 같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반지를 손에 넣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권력의 유혹에 휘둘린다. 프로도가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 반지를 놓지 않으려 했던 것처럼, 권한이 주어지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고, 심지어 그것을 내려놓기 어려워지는 것이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이건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새로운 권한이 주어지면 처음에는 성취감과 뿌듯함이 밀려온다. 왠지 내 가치가 인정받는 것 같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깨닫게 된다. 권한이란 단순한 ‘힘’이 아니라, 반드시 책임이 따라온다는 것을. 흔히들 말하는 ‘자율성 속에서 권한과 책임을 가진다’는 말은 얼핏 들으면 굉장히 멋있어 보이지만, 직장 생활을 오래 해본 사람이라면 그 말 속에 담긴 무게감을 잘 알고 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스파이더맨 시리즈에도 등장한다. 피터 파커는 우연히 초능력을 얻고, 처음에는 그 힘을 단순한 재미로 사용한다. 하지만 삼촌 벤이 세상을 떠나며 남긴 말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꾼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이는 곧, 권한을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의 책임을 짊어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권한이 아니라, 성장할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연차가 낮은 직원들에게 책임을 강요하지 않는 회사가 좋은 기업이라고 생각한다. 신입사원이나 사회 초년생들은 아직 업무 경험이 많지 않다. 이들에게 ‘책임감’을 강조하기보다는, 실수를 해도 괜찮은 환경에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마치 아이가 성장할 때 보호자의 돌봄이 필요하듯이, 회사도 직원이 자라날 수 있도록 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
너무 이른 책임은 오히려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 권한을 준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마치 높은 파도를 아직 탈 줄 모르는 서퍼에게 거친 바다로 나가라고 등을 떠미는 것과 같다. 준비되지 않은 책임은 부담이 될 뿐이고, 이는 결국 업무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만들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뛰어난 사람을 고용했다면, 그들에게 지시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즉, 권한을 주되 그것이 부담이 아니라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는 뜻이다.
좋은 회사는 단순히 권한을 나눠주는 곳이 아니라, 직원이 자연스럽게 책임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다. 권한을 준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리더십이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때로는 권한을 줄이는 것이 더 좋은 방향일 수도 있다. 진짜 좋은 기업은 ‘책임’이 아니라 ‘기회’를 제공하는 곳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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